“물이 최고의 선(善)인 세 가지 이유” 
신영복 고전강독 <89> 제8강 노자(老子)-9 


2) 노자 예제(例題)-5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8장) 

上善(상선) : 최고의 선 
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오) :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하다. 
幾於道(기어도) : 幾는 近. 도에 가깝다. (道無水有 故曰幾也--왕필주) 
居善地 心善淵. . . . : 善은 형용사, 부사, 동사로 각각 해석할 수 있다. 
與(여) : 더불어 사귀다, 施, 予(帛書) 
仁(인) : 人 또는 天(帛書) 

노자 철학을 한 마디로 ‘물의 철학’이라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도 이야기했습니다만 도무수유(道無水有)라고 했지요. 도는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 가운데 가장 도에 가까운 것이 바로 물이라는 것이지요. 

물의 성질과 운동을 통하여 도를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내가 제8장을 여러분과 같이 읽으려고 하는 것은 연대(連帶)의 논리입니다. 연대는 우리의 당면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논의는 우선 본문을 해독한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이 장은 매우 유명한 장입니다. 특히 ‘상선약수(上善若水)’는 그야말로 인구에 회자되는 명구입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이 경우 최고의 선은 현덕(玄德)이며 도(道)입니다. 물이 비록 현덕(玄德)이 아니고 도(道) 그 자체가 아니지만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현상형태라는 것이지요. 

노자가 물을 최고의 선(善)이라고 하는 까닭은 크게 나누어 3가지입니다. 

첫째는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물이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로(雨露)가 되어 만물을 생육하는 것이 바로 물입니다. 생명의 근원입니다. 

친구 중에서도 물 같은 친구를 가장 좋아하지 않나요? 필요한 경우 언제나 찾아가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벗이 바로 물 같은 친구지요. 

둘째는 다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투지 않는다는 것에 대하여는 좀 설명이 필요합니다. 다투지 않는다는 것을 매우 소극적인 의미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다투어야 마땅한 일을 두고도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도피주의(逃避主義)나 투항주의(投降主義)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다툰다는 것은 어쨌든 무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순조롭지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목표설정에 무리가 있거나 아니면 그 실천방법에 무리가 있는 경우를 쟁(爭) 즉 ‘다툰다’고 합니다. 

주체적 역량이나 객관적 조건이 미성숙(未成熟)한 상태에서 무엇을 추구하는 경우에는 그 진행과정이 순조롭지 못하고 당연히 다투는 형식이 되는 것입니다. 무리(無理)를 감행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지요. 쟁(爭)이란 그런 점에서 위(爲)입니다. 작위(作爲)이지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하는 일이 못되는 것을 노자는 쟁(爭)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손자병법에 ‘전국위상 파국차지’(全國爲上 破國次之)라 하였지요. 

나라를 깨트려서 이기는 것은 최선이 못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전국(全國) 즉 나라를 온전히 하여 취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것이지요.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작위(作爲)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자’ 마지막 장인 제81장의 마지막 구가 “天地道 利而不害 聖人之道 爲而不爭”입니다. 천지의 도는 이로울지언정 해롭지 않고, 성인의 도는 일하되 다투는 법이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 처한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 낮다는 것은 반드시 그 위치가 낮다는 물리적 의미가 아닙니다. 비천한 곳, 억압받는 곳, 피지배 계급 등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나는 이 구절을 노자의 정치학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읽습니다. 물론 노자사상이 민초들의 정치적 해방을 위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명시적 진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자의 사상은 근본에 있어서 민초들의 정치학입니다. 

그러나 ‘노자’는 근본에 있어서 고도의 제왕학(帝王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도가의 무리는 대개 사관(史官)에서 나왔으며 이는 인군(人君)이 나라를 다스리는 술수(術數)를 기술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소위 ‘무위(無爲)의 통치’는 군주의 비밀정치론이라는 것이지요. “도는 항상 하는 일이 없지만 하지 못하는 것도 없다. 후왕이 만약 그것을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이 스스로 그렇게 될 것이다.”(道常無爲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제37장)는 것을 근거로 들기도 합니다. 

이 경우의 무위(無爲)는 핵심적 권력의 장악을 의미한다는 것이지요. 핵심적 권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못할 것이 없다’(無不爲)는 것이지요. 백성을 무지무욕(無知無慾)하게 한다는 것은 곧 우민화이며, 백성들의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우게 한다는 것은 동물처럼 배만 부르게 하고 머리는 비게 한다는 것이지요. 의지를 약하게 만들고 뼈를 튼튼하게 한다는 것은 비판의식을 제거하고 힘든 노동에 견딜 수 있도록 육체만 튼튼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군주는 핵심적 권력만을 장악하는 것(抱一)으로 충분하다는 것이지요. 그 하나(一)가 설령 도(道)라고 하더라도 ‘대도(大道)’는 매우 주관적인 것으로서 군주의 통치권(統治權 : 행정권이 아닌)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노자사상은 전제군주의 비밀정치를 옹호하는 사상이라고 주장되기도 합니다. 노자사상의 소위 공평무사(公平無私)는 물론 법가(法家)가 계승하게 됩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권력을 극대화하고 권력의 소재를 은폐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지요.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도 노자를 계승한 것이며 비판적 의견을 봉쇄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되기도 하지요. 

노자사상에 대한 이와 같은 부정적 평가는 노자철학을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자’는 중국 사상사에서 최고의 철학적 담론임에 틀림없습니다.백보를 양보하여 ‘노자’를 정치사상이나 이데올로기라고 하더라도, ‘노자’의 정치학은 철저하게 민초들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춘추전국시대는 무한경쟁의 소용돌이로 치닫는 시대입니다. 부국강병의 방법론을 두고 수많은 이론이 속출하게 됩니다. 직접 일하지 않고 패자(覇者)에게 기생하여 지식을 팔고,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사사로운 이해를 도모하는 지식인계층이 사회적으로 확대됩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노자는 패권경쟁을 반대하고 그에 기생하는 지식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러면서도 노자는 자신의 주장을 사회학과 정치학의 차원을 넘어 철학적 논리로 승화시킵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이라는 최고의 철학적 체계를 완성합니다. 여기에 시대를 초월하고 있는 ‘노자’의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자는 자신의 철학적 논리로 패권경쟁을 둘러싼 일체의 행위를 반자연의 무도(無道)한 작위(作爲)로 단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자’의 이러한 철학적 내용 때문에 또 ‘노자’를 고답적인 피세(避世)의 철학으로 단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노자’를 피세의 철학으로 단정하거나, 제왕학(帝王學)이라고 성격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쟁과 하극상으로 점철된 살벌한 상황 속에서 패권경쟁을 반대하고, 그에 편승한 지식인들을 질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결단이 요구되는 실천적 행위로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대의 희생자인 민초들을 위하여 반전(反戰) 중명(重命)사상을 설파하고 약한 자가 이긴다는 희망을 선포하고 그들의 전술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서도 노자의 입장이 분명하게 표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춘추전국시대라는 천하대란을 당하여 모든 억압과 착취가 최종적으로는 가장 약한 민초들의 부담으로 전가됩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과 재산을 잃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이산의 고통은 결국 민초들의 몫입니다. 

이러한 민초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노자’의 곳곳에 피력되어 있습니다.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은 지배자들이 세금을 많이 걷어 먹기 때문이라는 것이 노자의 인식입니다.(제75장) 그러나 우리가 ‘노자’에 주목하는 것은 민초의 전략과 전술을 ‘노자’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처하는 것이며, 가장 약한 존재임을 뜻합니다. 가장 약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물입니다. 

민초(民草)가 그렇습니다. 천하에 물보다 약한 것이 없지만 강한 것을 공격하기에 이보다 나은 것은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莫之能勝 以其無以易之. 제78장) 이 78장에서는 물이 강한 것을 이길 수 있는 까닭에 대해서는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 以其無以易(변함없음)입니다. 이 구절 이외에는 모두 선언적인 것입니다. 유약(柔弱)이 사직(社稷)의 주인이 된다거나, 천하의 왕이 된다는 메시지만 선언하고 있습니다. 

연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긴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안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어내어야 하는 것은 왜 그러한 힘이 약한 것에 있는가 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몫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약한 사람이 그 수에 있어서 가장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강자의 지배력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것은 그가 지배하는 약한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자보다는 피지배자가 그 수에 있어서 다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을 지배하여 휘하에 부리는 경우에 비로소 그 힘이 나오는 것이지요. 그래서 강자의 능력은 그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地位)에 있다는 것이지요. 그 힘은 원래 약자의 것이지요. 

약한 사람들이 다수라는 사실은 2가지 점에서 결정적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는 다수 그 자체가 곧 힘이라는 사실입니다. 노자가 밝히고 있는 유일한 이유인 以其無以易之가 그런 의미입니다. 

다수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흐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강한 것을 공격하기에 물보다 나은 것이 없는 까닭은 물은 쉬지 않고 흐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낙수(落水)가 댓돌을 뚫는 이치가 그렇습니다. 쉬지 않고 흐를 수 있기 위해서는 일단 다수여야 합니다. 양적으로 우세하여야 합니다. 

둘째 다수(多數)는 곧 정의(正義)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곧 민주주의 원리입니다. 불벌중책(不罰衆責) 많은 사람이 범한 잘못은 벌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지킬 수 없는 신호등은 철거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물론 소수의 선동가에 의하여 다수의견이 왜곡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도언론의 막강권력에 의하여 여론이 조작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다수라고 할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약한 사람이 이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다수이기 때문이며 다수(多數)는 반드시 낮은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산(山)을 바라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낮은 곳이 많습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양은 적어집니다. 정상은 품이 작지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방금 이야기하였듯이 산정(山頂)은 산록(山麓)이 받쳐주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요. 강자의 능력과 힘이란 다름 아닌 다수의 약자에서 나온다는 것이지요. 

이야기를 좀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이 도에 가깝다고 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 낮은 곳에 처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노자의 정치학이라고 하였지요. 민초들의 전략전술이라고 하였습니다. 

낮은 곳에 약한 사람들이 살고 또 그 수에 있어서 다수라고 하는 사실을 어떻게 정리하여야 할 것인가? 현 상황에서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 바로 ‘노자’의 이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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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기분해수 전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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